마케팅 전략/2026년트렌드

트렌드 코리아 2026(김난도)

Marketcast 2025. 10. 24. 14:19

2025년은 불확실성의 압력이 일상의 모든 층위로 스며든 해였다. 사람들은 안정과 불안을 동시에 감내했고, 연결과 단절 사이에서 자신만의 균형점을 탐색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거대한 하나의 트렌드를 좇기보다, 작은 단위의 경험을 빠르게 시험하고 잊는 법을 배웠다.

2026년은 이러한 학습의 다음 장이다.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속도는 더 빨라지지만, 방향은 오히려 ‘근본’과 ‘준비’에 수렴한다. 『트렌드코리아 2026』이 제시하는 10가지 키워드는 AI와 인간의 공존, 감정의 질서 재편, 생활단위의 재구성, 그리고 진정성의 귀환이라는 네 개의 축으로 한 몸처럼 연결된다.

1) 휴먼인더루프(Human-in-the-loop) | AI 위에서 사유하는 인간의 자리

대형 모델이 삶과 조직의 구석구석에 스며들었지만, AI은 스스로 완결적인 존재가 아니다. 데이터의 한계, 맥락 해석의 취약성, 윤리 판단의 공백이 여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휴먼인더루프는 바로 이 지점에서 탄생한다. ‘루프’라 부르는 업무의 순환 고리 어느 지점에서든 인간의 판단이 최소 한 번 개입해야 한다는 원리, 그리고 그 개입이 단순한 오류 수정이 아니라 상황 해석과 책임의 부여라는 점이 핵심이다.

이 개념의 실천적 얼굴은 ‘켄타우로스형’ 인재다. 인간의 통찰과 언어, 윤리 감수성을 앞에 두고, 뒤에서는 AI의 계산·요약·예측 능력을 싣는다. 결과물은 더 빠르게 나오지만, 속도 그 자체가 목적이 되지 않도록 결정의 질을 마지막에 인간이 봉인한다. 2026년은 AI의 외주화가 아니라 인간-기계의 공동 저작이 표준이 되는 시점으로 기억될 것이다.

2) 필코노미(Oh, my feelings! The Feelconomy) | 기분이 목적이 되는 경제학

필요·의미·경험이 소비의 3대 축이었다면, 2026년의 소비는 여기에 ‘기분’이라는 축을 노골적으로 추가한다. 사람들은 기분을 측정하고, 분류하고, 바꾸기 위해 제품과 서비스를 선택한다. 차(茶) 한 잔을 고를 때도 ‘무슨 맛’이 아니라 ‘어떤 감정’에 맞는지를 묻고, 공간을 선택할 때도 동선이나 가격보다 ‘현재의 감정선과 얼마나 호응하는가’를 우선한다.


이 흐름은 ‘느좋(느낌이 좋아서)’ 같은 신조어, ‘기분 처방전’형 큐레이션, AI 캐릭터가 대신 감정을 표출해 주는 콘텐츠의 유행에서 분명히 드러난다. 동시에 ‘항상 좋은 기분’만을 정상으로 간주하는 감정의 표준화에 대한 경계도 잇따른다. 필코노미는 감정의 상품화이지만, 건강한 방향은 다양한 감정의 공존을 인정하고 그 전환을 섬세하게 돕는 데 있다.

3) 제로클릭(Results on Demand: Zero-click) | 찾기 전에 도착하는 결과의 시대

검색과 클릭이 사용자 주도 경험의 상징이던 시절은 저문다. 이미지 인식과 상황 추론, 요약·추론형 검색이 보편화되면서, 탐색·비교·선택의 단계는 압축되거나 생략된다. 사진 한 장으로 유사 상품이 제안되고, 용도 기반 분류가 자동으로 붙으며, 상단에는 이미 정리된 답이 펼쳐진다. 중요한 변화는 효율성을 넘어 주도권의 전환에 있다. 소비자와 이용자가 ‘찾는 자’에서 ‘제안받는 자’로 이동한다.

이 변화는 개인에게는 피로를 줄이고 시간을 돌려주지만, 동시에 보이지 않는 필터 속에서 결과를 수용하는 새로운 감수성을 요구한다. 제로클릭 시대의 일상은 선택의 자유와 제안의 편의 사이에서, 당위가 아니라 감각의 설득으로 재구성된다.

4) 레디코어(Self-directed Preparation: Ready-core) | 준비가 삶의 중심이 되는 세대감각

불확실성의 장기화는 ‘즉흥’보다 ‘준비’를 미덕으로 만든다. 레디코어는 하루 루틴의 엄격함을 넘어, 중장기 리스크에 대한 사전 대비를 삶의 핵심으로 삼는다. 노션과 엑셀의 계획표는 생산성 도구를 넘어 하나의 문화가 되었고, 취업·결혼 같은 굵직한 이벤트는 모의 환경에서 먼저 경험·실패·수정하는 과정을 거친다.

승진이 아니라 무형자산을 축적하는 옆그레이드의 가치관도 두드러진다. 계단식 경력보다 곁길의 탐색이 장기적으로 더 단단한 생존력을 가져다준다는 믿음이 자리 잡는다. 2026년의 레디코어는 자기 삶의 ‘조감도’를 갖춘 사람들의 태도학이며, 불안의 시대를 학습과 예행연습으로 건너는 방책이다.

5) AX 조직(Efficient Organizations through AI Transformation) | 플랫·크로스·잼세션의 일하는 방식

AI 전환은 기술 도입을 넘어 조직 문법의 변환을 촉발한다. 부서 경계는 느슨해지고(크로스 포지션), 직급의 층은 줄어들며(울트라 플랫), 프로젝트는 어젠다 중심으로 즉흥적 합주를 이룬다(잼세션). 이 구조에서 개인은 ‘관리자’보다 주도적 실무자로서의 가치가 높아진다.

인재상 또한 ‘T형’에서 한 발 더 나아간 ‘π(파이)형’으로 진화한다. 한 축은 도메인 전문성, 다른 축은 수평 확장성, 그리고 그 위에 AI 활용력이 얹힌다. 2026년의 조직은 명령과 보고의 사다리보다, 문제와 해결의 네트워크로 작동한다. 변화의 속도에 조직이 적응하는 방식은 통제의 강화가 아니라 자율의 구조화다.

6) 픽셀라이프(Pixelated Life) | 작고, 많고, 짧게 소비하는 일상

대중적 유행의 파도는 잦아들고, 마이크로 트렌드의 파편이 일상을 채운다. 사람들은 대용량 완제품보다 최소 단위의 경험을 선호한다. 0.5인분 배달, 미니 사이즈 화장품, 일·주 단위의 초단기 임대가 자연스러워진다. 한 분야의 깊이보다 다분야의 얕음을 기꺼이 선택하는 멀티 익스피어리언서가 늘어나며, 축제·박람회 같은 ‘압축 경험’이 각광받는다.

픽셀라이프의 핵심 감각은 지금 여기’에 대한 예민함이다. 사람들은 찰나의 재미를 탐닉하고, 미련 없이 다음으로 나아간다. 소비는 더 조밀해졌고, 충성은 길게 유지되기보다 자주 포착되는 빈도로 평가된다. 2026년의 라이프스타일은 거대한 서사 대신, 사소하지만 선명한 스냅샷의 연속이다.

7) 프라이스 디코딩(Observant Consumers: Price Decoding) | 가격을 해독하는 눈의 시대

가격은 하나의 숫자가 아니라 이유의 총합이 된다. 소비자는 원가·유통·브랜드 가치·사후서비스를 분해해 적정성을 판단하고, 납득 가능한 논리를 요구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프리미엄을 무조건 거부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헤리티지, 신뢰, 희소성 같은 요소가 명확히 증명되면 기꺼이 더 지불한다.


동시에 ‘듀프’ 문화는 모조가 아니라 대체의 미학으로 자리 잡는다. 원본의 상징성은 인정하면서도, 기능과 외형의 일부만 취해 자신만의 조합을 만드는 셈이다. 결국 프라이스 디코딩은 가격을 둘러싼 권력의 재조정이다. 브랜드의 독백이던 가격은 이제 소비자와의 대화로 재탄생한다.

8) 건강지능 HQ(Widen your Health Intelligence) | 지식에서 실천으로, 데이터에서 습관으로

IQ·EQ에 이어 HQ(Health Quotient)가 개인 역량의 기준이 된다. 건강을 안다고 믿는 단계에서, 데이터를 읽고 실행으로 전환하는 단계로 넘어가는 것이다. 심박·수면·스트레스 같은 바이오마커가 일상적으로 측정되고, 운동은 강도와 구간을 알고 실천하는 방식으로 고도화된다. 화장품의 성분을 이해하고, 임상 정보를 읽어내는 스킨 텔렉추얼한 태도도 보편화된다.

의료적 접근성은 높아지고, 삶의 질은 신체·정서·사회적 관계를 아우르는 총체적 관리로 확장된다. 2026년의 건강은 장수보다 가치 있는 시간의 연장을 목표로 삼는다. HQ는 정보를 더 많이 아는 능력이 아니라, 나에게 맞는 것을 고르고 지속하는 힘이다.

9) 1.5가구(Everyone is an Island: the 1.5 Households) | 독립 1과 연결 0.5의 균형

도시의 삶은 1인과 다인가구의 이분법을 벗어난다. 1.5가구는 온전한 자율성(1)에 필요시 선택하는 연결(0.5)을 더한 생활단위다. 본가의 실질적 지원을 받는 지원 의존형, 동료나 친구와 비용과 규칙을 나누는 독립 지향형, 코리빙 같은 시설 활용형이 대표적이다.

이 모델은 단지 주거의 변형이 아니라, 고립과 연대의 균형을 찾는 사회적 해법이다. 각자는 방에서 혼자이되, 공용공간으로 나오는 순간 더 이상 혼자가 아니다. 2026년의 1.5가구는 경제적 압력과 정서적 돌봄의 필요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가변적 공동체의 새로운 문법을 제시한다.

10) 근본이즘(Returning to the Fundamentals) | 가짜의 완벽함을 지나 진짜의 불완전함으로

알고리즘이 취향을 예측하고, 생성 모델이 무한한 변주를 쏟아내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원형과 원조, 축적의 시간에 끌린다. 박물관과 궁궐의 재발견, 클래식과 고전 문학의 재열풍, 스니커즈 복각과 아날로그 기록의 귀환은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원본에 닿고 싶다는 욕구, 그리고 시간이 만든 진정성을 체험하려는 열망이 핵심이다.

근본이즘은 또한 의도적으로 비효율을 선택하는 마음이기도 하다. 손글씨의 굴곡, 필름의 질감, 느린 제작 과정이 주는 낭만의 잔존이 삶의 균형을 잡는다. 2026년의 사람들은 기술을 거부하지 않되, 기술이 닿을 수 없는 영역의 가치를 다시 발굴한다. 미래를 향한 속도는 근본이라는 방향을 잃지 않을 때 가장 멀리 간다.

10대 키워드 한눈에 보기(요약 표)

1 휴먼인더루프 AI 루프에 인간 판단·책임 개입 사유·윤리·책임
2 필코노미 감정 관리가 소비의 직접 목적 무드·전환·다양성
3 제로클릭 탐색·비교·선택의 자동 축약 제안·요약·필터
4 레디코어 사전 대비·예행연습의 일상화 계획·모의·옆그레이드
5 AX 조직 플랫·크로스·잼세션의 협업 π형·자율·어젠다
6 픽셀라이프 최소 단위·마이크로 트렌드의 연쇄 미니·찰나·빈도
7 프라이스 디코딩 가격 구성 해독·정당성 검증 헤리티지·신뢰·희소성
8 건강지능 HQ 데이터→실천→지속의 건강 역량 바이오마커·총체성
9 1.5가구 독립 1 + 연결 0.5의 가변 단위 코리빙·지원·균형
10 근본이즘 원형·원조·축적의 시간에 대한 회귀 진정성·낭만·복각

트렌드코리아 2026 의 10가지 키워드는 각각 다른 얼굴을 하고 있지만, 한 방향을 향해 수렴한다. 휴먼인더루프와 AX 조직은 AI의 속도 위에서 인간의 판단을 되찾는다. 필코노미, 제로클릭, 픽셀라이프는 감정과 경험의 문법을 다시 쓰며, 삶을 작고 촘촘한 단위로 재배치한다. 프라이스 디코딩, HQ, 1.5가구는 합리성과 건강, 생활의 기본 단위를 재조정한다. 그리고 마지막의 근본이즘은 이러한 모든 변화 위에 진정성의 기준선을 그어 준다.

2026년은 기술이 인간을 대체하는 해가 아니라, 인간을 확장하는 해다. 속도는 기계가 주지만, 방향은 인간이 정한다. 진짜의 무게를 잃지 않는 한, 우리는 더 빠르게 달릴수록 오히려 더 인간다운 지점에 도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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